[2008] 도쿄 Tokyo!
2016. 5. 9. 14:06
마루님
영화/팝콘
치명적인 누설이 있습니다.
미쉘공드리 - 인테리어 디자인
도쿄에서 방잡는다며 하루 신세진다고 들였다가 남의 집에서 일주일을 버티고 있다. 남친에게 푼돈이라도 벌어야한다고 시급도 짠 알바에 지원해보지만 채용된건 별생각없던 남친이. 그나마 자산이던 차는 견인돼 견인비도 못낼 처지, 같이 빌붙어사는 남친은 영화란 직업이 유명세나 밥값은 못될지언정 결과물은 내고있고, 빌붙었던 친구와 히히덕거리는 걸 건너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날저녁 남친이 있는데도 내쫓지 않아준 친구덕에 철판깔고 하루를 뻗쳐 자는데 눈치도 없다며 민폐라는 친구남친. 그나마 걔 남친은 알바라도 한다며 두둔한다.
다음날 일어나 속이 텅 빈 것을 발견한다. 갑작스런 기괴함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한쪽발이 막대기로 변하더니, 다른 한쪽발도. 그리고 손까지. 이윽고 그녀는 의자로 변신한다.
도쿄라는 낯선 땅에 땅값은 비싸지, 할 수 있는 건 없지, 뭔가 하고싶거나 직업도 없다. 그렇게 사람과 의자를 넘나들며 도쿄 도심 속에서 표류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서야 자신이 의미있어지고 만족해한다. 다소 만화스런 설정이 급나와서 놀랐는데 흥미롭게 봤다. 카세 료가 적당히 장난기 있으면서 생각 없는 한량같은 남친 연기를 어찌나 제옷입은듯 잘소화하는지. 게다가 츠마부키 사토시가 어두운 극장에서 나왔을 때 친구남친인가 설마했는데 저 작은역을 하려고 나오다니? 카메오인지 뭔지 하여간 반갑.
솔직히 여자 둘 연기는 썩 그랬다. 히로코는 표정연기도 영 아쉬웠고 아케미는 머리를 너무 커텐쳐서 말하는데 앞머리 옆머리가 거슬려서 집중이 안됐다.
레오카락스 - 광인
하수구에서 미친 외국인이 출몰한다. 괴기스럽고 특이하고 불친절한데 이게 은유적 사회풍자인지 막만든건지 혼돈스러웠다.
그 하수구 속에는 옛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천승기가 헤어진채 걸려있고, 수류탄도 있다. 일본의 심장(도쿄) 저 밑바닥에 숨겨진 악행을 의미하는 것일까.
매스컴은 광인을 보도하는데 일반적인 뉴스세트도 아니고 어두운세트에 우울한표정. tv이름도 쿠모(구름 운) 일본내부에서 벌어진일인데도 외국인 출입국을 단속한다. 분명 광인을 두고 내치고 벌하라는 극우주의자와 그에게 자유를 달라는 찬성론자가 있지만 매스컴에선 극우주의자만 보도하고, 또 광인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이슈로 다루는데 그쳤다.
프랑스 감독이 아니라 한국인 감독이었다면 광인이 은유하는게 위안부 성노예에 관한 은유적 일침이나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에 관한 함의인가 싶을 정도로 극중 재판에서 일본에 공격적인 발언이 나오는데, 일본은 추하며 일본여자 눈은 성기같으며, 우리엄마는 나보고 잘생겼다는 발언이 나온다. 껄쩍지근한 발언과 해괴한 발언에 일본측 검사가 그럼 너는 잘생겼냐며, 엄마가 잘못말한거다라고 피장파장의 오류로 대응하는 것도 코미디였다. 재판과정에서 화면 3분할한 의미와 불어쓰는 프랑스 에꾸변호사, 재판을 지켜보는 객석에 안대쓴사람을 비롯한 이상한 행색의 사람들의 의미... 보면서 이해도 잘 안가고 뭐하는짓인가 싶었다.
특히 재판장이 전혀 사회화되지 않은 광인에게 법정모독이라며 법정을 모독하는 발언을 자제할것을 주의주라고 하거나, 광인의 발언마다 시시때때로 동요하는 객석에 정숙하라고 호통친다. 체면은 차리고 싶고 좌중을 통제하려하지만 그게 되나. 하여튼 은유적 의미는 더듬더듬 알겠다만 영 께름칙하고 개운치 않았다.
봉준호 - 흔들리는 도쿄
이제 드디어 도쿄 내부인이 등장하다 아주 꽉막힌 내부인인게 문제지만. 한 케이블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출연 영화를 방송하며 '일본의 송강호'란 수식어를 달았는데 공감간다. 일본의 백윤식같이 다작과 각종 선생역으로 카리스마를 가진 타케나카 나오토. 거기에 한국관객에게 청순여배우로 인지도 있는 아오이 유우. 봉준호 감독이 하고싶었던 배우들이겠다 싶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사회적 현상인 히키코모리. 그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건 역시 사랑인가. 좀 뻔하긴하지만 개연성있는 동기. 그녀가 어디사냐고 할때 내 마누라라고 할때 역시 영화에선 찌질이의 좌절로 흐르는 걸까 싶었는데 봉준호표 유우머.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꽤 많이 보았는데 일본의 잦은 일상중 하나인 지진은 전혀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다. 아예 지진 없는 나라라고 착각이 들만큼. 실제 지침이 있는건지 관객들이 마주하고싶어하지 않는 소재여서인지 단지 불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해서 없
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 감독을 통해 일본지진장면을 처음 볼 정도로 이례적인 장면이다. 것도 물건이 떨어지는 등 흔들림 심한 진도 4이상의 심한 지진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힘든 발걸음을 떼고 달려왔는데 거리에 아무도 없다. 다들 집구석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치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걸어나가면~이란 노래가사 같은 발상이다. 히키코모리에 대해 복합적인 현상요인이 있겠지만 정보사회와 자본사회로 일하지 않고도 돈만있으면 옷과 먹을 것은 얼마든지 배달까지해주는 노동력까지 금액으로 환산가능하기 때문에 집밖에 나갈 필요성을 감경시킨다. 집안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 거리가 텅빌날이 올지도. 그땐 밖으로 배달할 사람대신 로봇으로 노동력을 대신하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때마침 흔들리는 지진으로 그녀까지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성공한 그. 왠지 따뜻해지는 영화.
미쉘공드리 - 인테리어 디자인
도쿄에서 방잡는다며 하루 신세진다고 들였다가 남의 집에서 일주일을 버티고 있다. 남친에게 푼돈이라도 벌어야한다고 시급도 짠 알바에 지원해보지만 채용된건 별생각없던 남친이. 그나마 자산이던 차는 견인돼 견인비도 못낼 처지, 같이 빌붙어사는 남친은 영화란 직업이 유명세나 밥값은 못될지언정 결과물은 내고있고, 빌붙었던 친구와 히히덕거리는 걸 건너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날저녁 남친이 있는데도 내쫓지 않아준 친구덕에 철판깔고 하루를 뻗쳐 자는데 눈치도 없다며 민폐라는 친구남친. 그나마 걔 남친은 알바라도 한다며 두둔한다.
다음날 일어나 속이 텅 빈 것을 발견한다. 갑작스런 기괴함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한쪽발이 막대기로 변하더니, 다른 한쪽발도. 그리고 손까지. 이윽고 그녀는 의자로 변신한다.
도쿄라는 낯선 땅에 땅값은 비싸지, 할 수 있는 건 없지, 뭔가 하고싶거나 직업도 없다. 그렇게 사람과 의자를 넘나들며 도쿄 도심 속에서 표류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서야 자신이 의미있어지고 만족해한다. 다소 만화스런 설정이 급나와서 놀랐는데 흥미롭게 봤다. 카세 료가 적당히 장난기 있으면서 생각 없는 한량같은 남친 연기를 어찌나 제옷입은듯 잘소화하는지. 게다가 츠마부키 사토시가 어두운 극장에서 나왔을 때 친구남친인가 설마했는데 저 작은역을 하려고 나오다니? 카메오인지 뭔지 하여간 반갑.
솔직히 여자 둘 연기는 썩 그랬다. 히로코는 표정연기도 영 아쉬웠고 아케미는 머리를 너무 커텐쳐서 말하는데 앞머리 옆머리가 거슬려서 집중이 안됐다.
레오카락스 - 광인
하수구에서 미친 외국인이 출몰한다. 괴기스럽고 특이하고 불친절한데 이게 은유적 사회풍자인지 막만든건지 혼돈스러웠다.
그 하수구 속에는 옛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천승기가 헤어진채 걸려있고, 수류탄도 있다. 일본의 심장(도쿄) 저 밑바닥에 숨겨진 악행을 의미하는 것일까.
매스컴은 광인을 보도하는데 일반적인 뉴스세트도 아니고 어두운세트에 우울한표정. tv이름도 쿠모(구름 운) 일본내부에서 벌어진일인데도 외국인 출입국을 단속한다. 분명 광인을 두고 내치고 벌하라는 극우주의자와 그에게 자유를 달라는 찬성론자가 있지만 매스컴에선 극우주의자만 보도하고, 또 광인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이슈로 다루는데 그쳤다.
프랑스 감독이 아니라 한국인 감독이었다면 광인이 은유하는게 위안부 성노예에 관한 은유적 일침이나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에 관한 함의인가 싶을 정도로 극중 재판에서 일본에 공격적인 발언이 나오는데, 일본은 추하며 일본여자 눈은 성기같으며, 우리엄마는 나보고 잘생겼다는 발언이 나온다. 껄쩍지근한 발언과 해괴한 발언에 일본측 검사가 그럼 너는 잘생겼냐며, 엄마가 잘못말한거다라고 피장파장의 오류로 대응하는 것도 코미디였다. 재판과정에서 화면 3분할한 의미와 불어쓰는 프랑스 에꾸변호사, 재판을 지켜보는 객석에 안대쓴사람을 비롯한 이상한 행색의 사람들의 의미... 보면서 이해도 잘 안가고 뭐하는짓인가 싶었다.
특히 재판장이 전혀 사회화되지 않은 광인에게 법정모독이라며 법정을 모독하는 발언을 자제할것을 주의주라고 하거나, 광인의 발언마다 시시때때로 동요하는 객석에 정숙하라고 호통친다. 체면은 차리고 싶고 좌중을 통제하려하지만 그게 되나. 하여튼 은유적 의미는 더듬더듬 알겠다만 영 께름칙하고 개운치 않았다.
봉준호 - 흔들리는 도쿄
이제 드디어 도쿄 내부인이 등장하다 아주 꽉막힌 내부인인게 문제지만. 한 케이블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출연 영화를 방송하며 '일본의 송강호'란 수식어를 달았는데 공감간다. 일본의 백윤식같이 다작과 각종 선생역으로 카리스마를 가진 타케나카 나오토. 거기에 한국관객에게 청순여배우로 인지도 있는 아오이 유우. 봉준호 감독이 하고싶었던 배우들이겠다 싶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사회적 현상인 히키코모리. 그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건 역시 사랑인가. 좀 뻔하긴하지만 개연성있는 동기. 그녀가 어디사냐고 할때 내 마누라라고 할때 역시 영화에선 찌질이의 좌절로 흐르는 걸까 싶었는데 봉준호표 유우머.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꽤 많이 보았는데 일본의 잦은 일상중 하나인 지진은 전혀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다. 아예 지진 없는 나라라고 착각이 들만큼. 실제 지침이 있는건지 관객들이 마주하고싶어하지 않는 소재여서인지 단지 불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해서 없
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 감독을 통해 일본지진장면을 처음 볼 정도로 이례적인 장면이다. 것도 물건이 떨어지는 등 흔들림 심한 진도 4이상의 심한 지진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힘든 발걸음을 떼고 달려왔는데 거리에 아무도 없다. 다들 집구석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치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걸어나가면~이란 노래가사 같은 발상이다. 히키코모리에 대해 복합적인 현상요인이 있겠지만 정보사회와 자본사회로 일하지 않고도 돈만있으면 옷과 먹을 것은 얼마든지 배달까지해주는 노동력까지 금액으로 환산가능하기 때문에 집밖에 나갈 필요성을 감경시킨다. 집안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 거리가 텅빌날이 올지도. 그땐 밖으로 배달할 사람대신 로봇으로 노동력을 대신하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때마침 흔들리는 지진으로 그녀까지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성공한 그. 왠지 따뜻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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