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 춘금초 春琴抄

2021. 5. 27. 19:44

마루님

영화/추천

주인공은 9살때 시력을 잃고 일본의 가야금 코토와 작은 기타같은 샤미센 연주자로서 춘금초라는 예명으로 명성을 날린다. 참고로 琴은 가야금 해금할때 그 금이며, 정작 코토의 표기는 아쟁할때 쟁箏을 쓰지만 일본내에서 구분을 제대로 안하고 섞어쓰다보니 춘쟁초가 아닌 춘금초가 된듯. 76년판의 영제목은 spring koto.

사스케는 춘금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코토를 사사받는다. 춘금은 예민한 예술가적 기질과 천하일색 미모지만 장애를 가졌다고 걱정반 얕보는 사람들한테 맞서 성격도 보통이 아니다. 수제자인 사스케에게도 주인으로서 스승으로서 엄격하다. 사스케는 싹싹하고 성실하고 춘금을 위해 기꺼이 손발이 되어준다. 지진을 계기로 사스케에 의존하던 자신을 자각하게된 춘금. 점점 스승과제자 사이에 주인과몸종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러나온다. 사스케는 어떤 유혹도 다른 여자 유혹까지도 뿌리치고 온통 춘금에만 정신을 두고 있어 큰일 당할뻔한 춘금을 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춘금은 비혼 상태에서 애를 가지는데 메이지시대 초기라니까 1868년 이후인데 신분제가 엄격해서 주인이 하인의 아이를 가졌다는게 가문의 명예에도 개인의 명예에도 큰 흠결이었던듯 춘금은 사스케의 아이임을 극구 부인하면서 사스케 역시 사제 관계가 지엄한데 그럴수가 있느냐며 한사코 부인한다. 결국 아이를 친척집에 보내고 춘금은 독립하여 사스케를 비롯해 다른 시종을 거느리며 살기 시작한다. 사스케의 제자에도 질투를 부리고 부정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은 깊어져간다. 그러다 춘금에게 앙심을 품은 남자가 춘금에게 뜨거운물 테러를 하여 춘금의 아름다운 외모에 화상을 입게된다. 화상의 상처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춘금의 걱정은 붕대를 풀게되면 사스케가 흉해진 자기 얼굴을 보게될까봐 그게 더 견딜수가 없다는 춘금. 결국 사스케는 자기눈을 찔러 영원히 아름다운 춘금으로 남게되었다는 얘기다.

나같은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보기에 결말이 처음에는 둘다 눈이 안보이면 생활은 어떡할거야 대책없다고 혀를 차다가도, 80년대작 춘금초 애니판까지 보고나니 현실을 배제하고 낭만주의적인 관점에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위한 일종의 예술혼 같은 거라고 깨달았다. 어떻게 모든 작품이 하이퍼 리얼리즘만 있겠냐고, 비현실적 낭만도 동화같은 세상도 있는거지 라고 생각을 넓혔다.

자꾸 '동화', 예술적 아름다움을 운운하는건 단순히 주종관계속에 싹트는 사랑 어찌보면 할만큼 하고 보는 입장에서도 볼만큼 본 진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표현하는 연출력이 한편의 소설을 보는듯 유려하면서 노출하나도 없이 성적긴장감을 표현하는 것, 특히 일본 전통악기에 대한 예술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녹인 작품성을 갖춘점을 높이산다. 70년대 일본영화 수준이 이정돈데 50년지난 지금은 왜이렇게 퇴보했는지. 실제로 2008년에 5번째 리메이크했지만 76년작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함.

한편 학창시절 가야금부로 상도 탔어서 극에 등장하는 코토는 처음보지만 12현인것도 그렇고 너무 흡사해서 유심히 봤는데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현끝에 지지하고 튕기는 가야금과 운지법이 달랐다. 한국 위키 믿지마라 코토 13현짜리도 있고 12현도 있음, 극중에선 12현. 생각해보면 가야와 일본은 교류를 많이 했으니 놀랄건 없는데, 일반사람들은 코토 연주해도 뭐가다른지 듣는귀가 없으니 사스케를 위해 뜯었다는 코토 연주회에서 춘금의 현란한 고토실력 뽐내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냥 전통악기를 사제관계의 도구가 아닌 서사화 한 원작자 +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감독 이렇게 시너지가 나는게 그야말로 '문화의 힘'이 느껴졌다. 우리의 전통, 우리의 문학소설도 관심갖고 힘을 실어줘야함.

여기에 춘금이 '손시렵다'고 하면 사스케가 손으로 데워주려다가 춘금이 마뜩찮아하면 사스케가 가슴에 가져가 따뜻하게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춘금의 잔망이 귀여우면서도 키스씬조차 없는 이 영화의 최대 스킨십인데 발까지 데워주는 점에서 발페티쉬스러움. 또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여주가 '아이오군 손시려'라고 말하는 명장면이 있는데 [춘금초]가 영화5번 애니1번 드라마화까지 자주 리메이크 된 유명한 작품이라 [춘금초]의 영향을 받았지않았을까 싶다.

영화는 지금봐도 손색없이 재밌음. 다만 주인공에 집중한 편인데도 요즘 작품에 비하면 주변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가 더러 있다. 옛날의 나였으면 군더더기 같이 느꼈을테지만 옛날사람들의 생활상 관찰 차원에서도 흥미롭게 봤다. 결말이 같이 수십년 더 살면서도 결혼하지 않고 스승으로서 존경을 다했다는 변사같은 내레이션으로 끝나는데 그게 상상의 여지를 안주고 꽝꽝 닫힌결말인게 옛날영화다움.

오랜만에 글써서 생각대로 글빨이 안나온다. 원작가 얘기도 할랬는데 영화의 감동을 망치는 작가 사생활 짜증나서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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