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안나

2023. 9. 25. 03:03

마루님

Drama/완주

악의 상대성

시대배경에 걸맞는 장소섭외는 뻔히 2000년대 이후같은 곳이 더러 보여 아쉬워했지만 양복점 유리글씨, 노란봉투, 보리차같은 소소한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맞아 옛날엔 보리차 마셨지.
헛바람든 유미가 루이뷔통 (가짜)가방 들고, 취직했으나 부모 대출갚는 흙수저기자 지원 msi 노트북 대비
진지하게 보자면 지원이 마음만 먹으면 안나처럼 얼마든지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직업이 기자인지라 반지하에 궁상 떠는 삶이 좀 현실감 없었다. [삼성을 생각한다] 보면 법조인보다도 기자한테 상납을 더 많이한다는데 정의를 추구하는 기자여서 안받은 거겠지.
출세를 도와주는 안나의 동료들VS텃세와 은근 성희롱 하는 지원의 동료들
안나에겐 가만히 있어도 기회를 주려하고 끈 없는 지원은 선배들의 텃세와 남초환경 사이에서 여자라고 비아냥 듣고 성희롱성 터치가 있다.
안나의 뒤를 다 캐놓고 기사화하지 않은게 꽂아준 안나에 대한 정이었을까 아님 그게 지원이 정의의 선을 넘기 시작한 시작점이었던걸까? 포커페이스 한답시고 안나가 너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데다 너무 창창하다못해 넘사벽이 되면서 현실적인 지원에 더 이입됐다.

수능성적표 나눠주며 하던 선생님 대사, 먼저 다가와주는 대학선배, 치마에 엄격한 사모님(브람스부터 눈여겨보고있는 배우), 학벌보고 싱글벙글하는 미술학원장 등 현실적인 대사와 톤
그 유명한 빈센트앤코가 나올줄이야ㅋㅋㅋㅋ빈센트앤코 명품마케팅한답시고 개깔보는 헤드라인으로 뽑은 잡지기사 사후에 보고 폭소했었는뎈ㅋㅋㅋ그 빈센트앤코를 모파상의 [목걸이] 에피로 써먹다니 영리해
게다가 살짝살짝 뇌리를 스쳐지나간 유명인이 대체 몇이야... 자세히 쓰고싶어도 한국엔 표현에 자유가 없으니 읍읍 한국판 리플리의 총체같았다.

표준어 섞인 사투리 정말 싫어하는데 작가겸 미술관장의 표투리는 현실에 서울살면서 있을법한 사람 그대로 같았고, 여기 네이티브 사투리 구사자만 쏙쏙뽑아서 경상도 마을이 배경이지만 사투리 꽝만 즐비한 [검사내전]한테 귀싸대기 날리며 '이것이 사투리다'하고 본보기를 보여주는 정도여서 특히 친구랑 논의할때 그친구가 부산사투리 네이티브여서 정말 찰졌다. 그런데 유독 지훈부친만 사투리가 너무나도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 흉내여서 사촌이 그랬듯이 페이크 부친이라고 복선임을 확신했는데 왜진?

사실 극의 긴장감은 안나가 계단으로 다니다가 현주가 봉투 들이미는 순간과 주차장에서 드라이브 기어 넣던 순간을 빼면 서스펜스가 부족했다. 정체를 아는 사람이 하나같이 미국에 있었거나 미국을 갔거나 해서 협박도 별로 안받았다. 원래는 안나가 리플리라서 안타고니스트가 주인공인 피카레스크인데, 어느순간 안나보다 더 강한 악인 지훈이가 있어서 죄책감에 시달린 후 안나가 프로타고니스트가 돼버려 내가 보고싶었던건 안나의 파멸이었는데 스스로 자수하고 인과응보 시켜주는 주인공이 되면서 내생각과 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안나가 그놈의 포커페이스하는 설정 아니고 감정에 충실한 역이었으면 어땠을까. 안나가 호화 생활을 해도 감흥이 너무 없어 도파민이 안나왔고 심지어 현주한테 무릎 꿇을때도, 모든게 밝혀졌을때도 감정이 가려져서 썬팅된 차안을 보는 것처럼 답답했다. 뻔뻔한 모습, 가식, 초조한 모습 등 감정에 예민한 쪽이 더 극적이고 감정연기에 몰입할 볼거리인데 안나는 리플리 캐릭터치곤 의뭉스러운 캐릭터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화장기 없이 수수하게 고등학생부터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유미에서 차분하고 품위있게 변신한 안나까지 [스타트업]보다 넓어진 수지의 폭에 감탄.
[허스토리]에서 정의를 위해 투신하던 변호사 정준한이 야망에 찌든 사짜 사업가 출신 정치가로 동일인물인거 알고보는데도 혐오스러워서 소름끼치는 '현실적인 소시오패스'를 잘 소화했다. 더이상 악인은 악에받쳐 소리지르지 않는다. 흘려주는대로 기사 받아쓰지 않겠다는 지원에게 '반골기질'운운할 때 그 부드러운 악의. 특히 "그 미친년이 나한테 먼저 연락했더라고" 소름쫙돋아서 보다가 소리지르며 전율했다.

서스펜스적이고 극적인 요소가 많은데 비해 OST가 많이 미진했다. 첫화 엔딩곡을 제외하면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전율돋는 상황에서도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줄 OST가 없었다.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 너무 터무니없는 청각장애설정의 도구화를 보다가, 수화를 단지 청각장애인과의 대화수단으로 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한테 수어를 쓰는 장면이나 떨어진 거리에 비장애인 아빠에게 가족끼리 수어를 활용하는 점이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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