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2018. 4. 22. 00:00

마루님

Drama/하차

밥 잘사주는 예쁜누나.
결혼전 송중기가 송혜교를 두고 자신에겐 그런 존재라던 인터뷰를 그대로 제목으로 따왔다. 감독은 [밀애],[풍문으로 들었소] 사회비판과 풍자와 자기연출 색깔로 유명한 안판석 감독. [풍문] 평판이 좋아서 한번 지나가다 틀었는데 나는 대사디렉팅이 영 드라마같지가 않아서 그냥 채널을 돌렸던 기억 밖에 없다.

영화로 홈런친 손예진이 간만에 안방복귀작이래서 기대를 갖고 봤는데 기존의 드라마와는 굉장히 다른 차별점을 갖고 있고 왜 그가 복귀작으로 [예쁜 누나]를 택했는지는 짐작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일단 한국의 전형적인 가족상은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로 지리한 답습을 거치고 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가부장사회에 찌든 구태 드라마들. 다른 프라임타임 드라마와 다르게 왜 진아가 독립하지 않고 부모밑에 사는 거 부터가 약간 의아했는데 거기 나오는 생활상을 보고서야 무릎을 쳤다.

구태에 찌든 K드라마 속 가정상(약칭 K가정상)은 몇가지 규범들로 지배돼 있다. 아빠는 엄마한테 일방적으로 하대하지만, 엄마는 일방적으로 존대함. 요즘 세상이 어떤시댄데 울엄마도 반말하시는데 [예쁜누나]는 엄마가 아빠한테 말깜.
K가정상은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딱봐도 은퇴나이인 아빠는 세탁소든 뭐든 숨쉬는한 열심히 현업종사함. 하지만 직장생활 오래한 사람들은 자식들이 요즘 30대나 돼서 결혼하니 그쯤 돼서는 은퇴한게 일반적인게 현실인데 K가정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실이다. 가부장제에서는 돈못버는 가장은 자격이 없기 때문이지만, 정말 가부장제로 서로를 옭아매지 않아야 서로가 편하다. [예쁜 누나]속 아빠상은 은퇴 후 놀고계신다. 소일거리도 개똥도 안하고 그렇다고 살림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혁신적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엄마가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아빠한테 자연스럽게 물떠달라고 하는 장면보고 깜짝 놀랐다. 그 동안 그런 광경은 현실에선 별거도 아닌 그야말로 흔해빠진 아주 사소한것이지만 K가정상 내에선 아빠가 일방적으로 해왔던 행동으로, 엄마는 절대 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엄마가 물달라고 할땐 있는집은 가정부 시키고 없는집은 자식시키고. 암튼 K가정상에선 엄마캐는 대학/결혼 등등 자식의 욕구를 원하지만 자신을 위한 사소한 심부름은 잘 시키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수없이 많이 거쳐왔지만 고정된 K가정상은 (예비)며느리 한테는 존칭이나 존중체를 쓰지 않고 거리낌없이 반말하지만 (예비)사위에겐 융숭한 대접과 함께 하게체를 깍듯이 쓰며 어려워함. 그런데 [예쁜누나]에서는 서울대출신 변호사인 규민이를 일등신랑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처부모님들이 반말에 이름호칭을 한걸 보고 컬쳐쇼크. 현실에 있지만 절대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는 광경이며, 극중에서는 예비사위 스펙도 좋지만 집안도 의사,교수집안이라 자기딸한테 살짝 후려쳐가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파팍 밀어주는 상황인데도 K가정상이 조장하는 처부모들이 죄진거 없이 굽신거림이 없어서 보기 좋았다.

회사생활에서도 여기저기 터지는 직장내 성희롱, 치적 빼앗으려는 상사와 인건비 아까워하는 오너, 윤진아가 감당하는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나 자기 딴에는 잘하려고 했지만 회식때 성희롱 받아주는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에서 동료가 질색하고 답답한 윤진아. 그 모든 캐릭터가 현실적이고 딱히 선악을 나누고 권선징악을 주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현실 그자체를 투영하는 느낌이 들어서 꽤 흥미롭게 봤다.

러브라인은 생각보다 못미쳤다. 정해인이 손예진더러 쪼그맣다쪼그맣다하는 대사랑 안맞게 본인이 작고 조그매서 이질적이었고, 느끼하게 씨익웃는 모습이나 연기가 ‘연하남 연기하고 있어요‘가 너무 티나서 자연스러운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레라고 넣은 장면을 티나게 받아먹은게 몰입이 잘 안됐다. 정해인이 자타공인 훈남인데 손예진은 평범하게 나오는 설정도 좀 노이해긴 했지만 여자 시청자들 손예진한테 감정이입 시키려고 그랬나봄.
그리고 생각보다 러브라인이 빨리 진행되는게 불만이었다. 원래 썸을 한껏 끌어준후 후반가서야 푸는건데 준희가 언제 마음이 생긴건지도 모르겠고, 진아가 그렇게 심사숙고 없이 갑작스럽게 준희에게 연인으로 들이댄것도 너무 돌발적이다. 그 이후 달달한 장면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만큼이나 실제 연인을 방불케 했는데, 그 전의 서사가 충분하지 않고 콩구워먹듯이 끝내다 보니 달달보다는 어벙벙한 느낌이 더 컸다.

준희 친구들 MT가는데 몇 살이냐고 묻자 당당하게 낼모래 마흔이라고 자학반 하는 게 현실적이었고 여자끼리 모여서 자기얘기하면서 잘 노는거 진짜 현실, 그 중에 취업피해서 대학원 진학한 사람이 있었는데 우울 심각 하지 않고 남친따라 놀러온것도 그렇고 아무렇지 않게 현실을 짚어내면서도 딱 ㅇㅇ캐릭터는 ㅁㅁ할것이다라는 규정적 묘사를 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아모친 캐릭터는 현실적이면서도 엄청난 자기모순을 반복하면서도 자식사랑이 끔찍한 기존의 모성애 충만한 엄마캐릭터를 계승한다. 엄마캐릭터는 선인이든 악인이든 자식사랑이 기본인데, 속물이면 악인캐릭터란 드라마내 이분법적인 캐릭터 공식을 따르지 않는 입체적 캐릭터다. 딸걱정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후려치고, 진아보다 동생인 승호를 챙기면서 차별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악행처럼 묘사하지 않고 공기처럼 지나간다. 엄마 돌아가시고 아빠는 재혼하고 낙동강 오리알이된 진아 친구 남매를 살갑게 반찬챙겨주고 현관문 비번까지 알려주면서 마음껏 드나들라고 하지만, 자기네들끼리 있을 때는 내자식이 저런집에 시집가면 말린다고 말하는 내로남불... 현실에 수도 없이 마주치는 선악이 공존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를 브라운관 하나에 넣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나에겐 가장 소중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거, 항상 사람이 모든면이 일정하게 같을 수는 없다는거, 사람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거 그게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그리고 윤진아로 말할거 같으면 착해 빠진 애다. 평범하게 대학나와 회사쫓아다니며 자기일하고 그러면서 엄마그늘에서 엄마 만족시켜줘야 하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였지만, 윤진아에게 쏟아진 비판은 드라마가 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드라마 반응이 더 짜증스러웠다. 35먹고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구냐 그러는데, 전형적인 한국인의 나이에 입각한 사고가 경직돼 있음을 재확인 할 뿐 윤진아 캐릭터는 죄가 없다. 나이 많다고 똑똑하고 능숙하고 다 잘하는 게 아니다. 어려도 똑똑한 사람은 똑소리나고 야무지게 잘하고, 나이 먹었어도 우유부단한 사람은 똑부러지지 않다. 그걸 왜 나이탓으로 유무죄를 가리는지 미개하고 한국인의 울병을 주인공이 통쾌하게 한방먹이는 쇼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주지 않는, 요는 도덕적으로나 일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주인공이 한방먹이지 못해서 대리만족 욕구충족이 안되는 드라마인건 맞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처음에 성희롱도 넘겨가며 ‘윤탬버린’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윤진아가 더 이상 그런 요구에 응하지 않고 연대해 나가는 것도 성장인데 나는 그 성장도 의미있게 봤다. 어떻게 보면 기민하게 시청자들의 요구에 응하려고 했으면 프로타고니스트인 윤진아는 동료이자 안타고니스트로 다른 O탬버린을 설정하고 그를 족쳤어야 기존 작법에 맞는건데 안타고니스트 설정을 갖고 있었으니 사전에 감독이 욕먹을 캐릭터라고 괜찮겠냐고 했던게 전부 예상했던걸 밀어붙이는 것도 참 대단하다. 시청자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킨 뚝심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중에 손예진과 러브라인이 컸는데 러브라인이 그렇게 후루룩 해버리고 허락받는걸로 가버리니 난관이 예상되는 것도 영 땡기지 않았고 전남친 규민과 어떻게든 연결해 준희가 해결해주는 멋진 남주 에피도 좀 작위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건 연출에 관한 모든 것이 싫다. 이때까지 다른것들로 감안하고 꾸역꾸역 8화까지 봤건만 도저히 한계가 왔다.
일단 조명팀이 제대로 있는지 의아한 불 다 끄고 어둡게 찍은 장면들이 너무 답답하고, 다른 감독들은 색감이나 예쁜화면에 골몰하는데 이 드라마는 조명 어두운 레스토랑에 들어온 기분처럼 칙칙하다. 그리고 듣도보도 못한 카메라 워크. 엑스트라 이용해서 화면지나가고 그런거는 영화에서 어쩌다 한번씩 있는건데 이 양반은 장면전환때마다 화면을 가리고, 사무실 비춰주는 것조차도 그냥 보여주는 법 없이 항상 뭐에 가려있다가 스멀스멀 가린사이로 보여준다든가 하니까 답답터졌다. 그렇다고 영상미는 없다. 이게 안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이라고 하니 보통 드라마는 작가의 미학인데, 안판석PD의 드라마는 유독 안판석드라마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획에 대본에도 관여 많이하고 연출이며 음악까지 전부분을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분업이 안되어있어 작가가 바뀌더라도 달라질 건 없어보이고 앞으로 볼일은 없음.
보여주는 화면도 계속 걸리적 거리는 판에 OST는 더욱 끔찍했다. 옛날 90년대 초반 올드팝과 올드팝 스타일의 선곡리스트들이 장면에 맞지 않게 화사한 장면도 올드하게, 전혀 상황에 맞지 않을 때에도 욱여넣어 장면을 더 쳐지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가뜩이나 시커멓고 칙칙한 화면에 세월아 네월아 stand by your man이나 90년대 크리스마스 시즌에나 어울렸을 법한 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10년대에 들으니 더욱 구렸다. 슬로우 걸기까지 해서 무슨 [당신이 잠든사이에] 재탕 치려는 줄 알았다. 또 레이첼 야마가타가 지 필에 취해서 부르는 something in the rain는 정말 못들어주겠다. 선곡 하나하나가 주옥같이 질리는 곡들. 올드팝으로 도배를 하면서 그 곡들 때문에 보는 내내 노이로제 걸리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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